Editors’ Note: This is a Korean translation of a Teach 3.11 annotation. We invite volunteers to translate and/or contribute content in Korean, Japanese, and Chinese languages. Thank you. (한국어, 일본어, 중국어로 기존의 내용을 번역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기고할 자원활동가를 찾고 있습니다.)

Clancey, Gregory. 2006. Earthquake Nation: The Cultural Politics of Japanese Seismicity, 1868-1930.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.

Earthquake Nation 은 비교적 최근–1995년 고베, 2011년 토호쿠와 칸토 지방—에 일어난 “일본 지진활동도(Japanese seismicity)”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. 미국 기술사학회 에서 시상하는 시드니 에델슈타인 상의 2007년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, 일본의 역사에서도 특히 역동적인 기간 동안 일어난 지진학, 건축학, 공학, 문화, 정치, 그리고 살아있는 지구의 복잡한 상호 작용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.

메이지 시대(1868-1912)는 일본 역사에서 열성적으로 “근대화”에 노력을 기울였던 시기로 종종 그려진다. 이 시기 지진활동도는 일본인들의 자연, 기술, 그리고 “서양”의 지식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지식의 차이에 대한 이해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? 또한, 지진활동도의 과학, 기술, 그리고 이의 물리적 경험은 국가 건설, “근대화,” 그리고 제국의 확장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? 클랜시는 정보를 풍부하게 담고 있으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이 책에서, 이와 같은 질문들을 다루고 잇다.

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분석과 이야기는 1891년 나고야 부근을 강타한 규모 8.0가량으로 추산되는 노비 대지진에 관한 것이다. 이 지진으로 인해 7,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40,000명이 집을 잃었다. 메이지 시대 일본에 혹독한 시련을 가져다 준 재앙이었다. 클랜시는 이 노비 대지진 이전부터 시작하여, 도쿄와 요코하마를 초토화시키고 142,000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되는 규모 7.9의 1923년 칸토 대지진과 이에 따른 화재에 이르기까지 “일본 지진활동도의 문화 정치학”을 추적한다.

클랜시의 주장은 다면적이고 복잡하지만, 그 일부를 들여다 보면 이렇다. 메이지 시대의 과열된 “근대화” (“서양화”)의 열기 속에서, 서양의 벽돌과 석조 중심의 건축물은 근대 문명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강하고 영속적이며 남성적인 이미지를 획득한 반면, 일본의 목조 건축 구조는 한물간 전통의 상징적인 모습, 즉, 약하고 일시적이며 여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. 그러나 노비 대지진으로 인해 유연한 목조 건물들보다 더 만신창이가 된 단단한 석조건물들은 이러한 관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. 비록 이 지역 풍경은 산산조각이 난 일본식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의 잔해로 엉망이 되었지만, 일본 기자들과 예술가들은 이 지진으로 인하여 명백하게 드러난 서양식 구조의 취약성과 전통 건축물의 상대적인 탄력성이 서로 대조되는 놀라운 현상에 대한 담론을 재구성 해 나갔다. 이는 이후 일본의 국가 건설 프로젝트(궁극적으로는 제국주의적 확장)를 주도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적인 담론의 재 부상을 불러왔다.

이 책에서 클랜시가 다루고 있는 노비 대지진에 관한 대부분의 내용은 50페이지 가량의 논문으로도 출판되었다.

Clancey, Gregory. 2006. “The Meiji Earthquake: Nature, Nation, and the Ambiguities of Catastrophe.”Modern Asian Studies 40:909-951. http://www.jstor.org/stable/3876638.

– YeonSil Kang

 

단행본: 지진국가 (2006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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